< What is love? >
2022.05.07
유승희
유승희
사랑이란 무엇인가? 그저 애인, 가족, 친구, 애완견, 애장품 등에게 느끼는 감정일까? 과연 그 감정이 사랑의 전부일까? 진정한 사랑은 어떤 것인가?
사랑은 줄 때와 받을 때로 나눠 생각해 볼 수 있다. 사랑을 받을 땐 행복하다. 내가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어떤 이의 따뜻한 눈빛이 나를 감쌀 때 사랑이 덮인다. 받는 사랑은 사람을 꽉 채워준다. 대부분 사랑을 받을 때는 좋아한다. 아니 인간이라면 사랑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본능이기 때문에 모두가 원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사랑에 대해 논할 때 보편적으로 공감 가능한 ‘받는 사랑’보다 개별적인 감정이 부각되는 ‘주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의 의미에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을 줄 때 어떠한가? 행복하지만 씁쓸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받을 때처럼 마냥 행복하진 않는다. 그 이유는 사랑을 준다는 것은 내가 마음을 상대에게 베푸는 것인데 이때 희생, 인내, 배려, 내려놓음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본인은 위와 같은 사랑을 어머니에게서 느꼈고 성경에 있는 예수님의 사랑을 통해서 접했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나오신다. 하나님은 신이다. 그런데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이 땅에서 가장 낮은 곳 ‘마구간’에서 태어나신다. 그리곤 평생을 누군가에게 베풀고 누군가를 가르치고 병을 고쳐주며 용서하고 살아간다. 그리곤 마지막엔 온갖 고문을 당하고 심지어는 자신을 따르던 제자에게도 부인당하며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모든 고난과 희생을 감당할 수 있었음은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성경에선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그분의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_ 로마서 5:8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그분의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_ 로마서 5:8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믿음이 없어도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희생하고 죽으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 숭고한 무언가 앞에서 작아짐을 느끼게 된다. 예수님의 사랑은 “응답이 오지 않아도, 이해가 가지 않아도, 어떤 수모를 당해도, 대가가 없어도 사랑합니다.” 이 문구에 담긴 내용이 아닐까. 그리고 이러한 사랑이 ‘주는 사랑’에 가까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러한 응답 없고, 대가 없어도 사랑하는 사랑은 현대적 사랑과 거리가 멀다. 효율과 효용의 가치가 지배하는 오늘날엔 가는 만큼 오는 것이 있어야 된다는 식의 사랑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 중심, 거대자본주의, 상품화, 물질주의, 소비주의, 자기중심주의가 극심화되면서 ‘주는 사랑’의 의미는 절실해지고 있다. 본인마저도 사랑할 때 응답을 바라고 이해와 대가를 바라며 수모는 없길 바란다. 이러한 사랑이 과연 사랑을 줬다고 할 수 있을까. 여기엔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만 존재하는 것 아닐까. 그러다 보니 오늘날엔 상대에 대한 사랑보단 나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찬 나르시시즘적 사랑이 많아 보인다. 이는 겉으론 사랑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은 자신을 향한 사랑을 갈구하며 사랑받기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만 담겨있다. 이 사랑은 진실성이 결여되어 왜곡된 사랑이 되어버린다.
오는 것이 없는 사랑, 주기만 하는 사랑은 참 어렵다. 하지만 상대에 대한 희생과 인내와 배려가 깔린 어려운 사랑이 실행될 때 그 사랑은 상대방을 넘어 나 자신에 대한 사랑으로 확장될 것이다. 더 나아가 상대에 대한 인정을 바탕으로 하는 사랑은 나에 대한 인정으로 나아간다. 나 자신에 대한 인정은 자신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것이고 이는 나도, 너도 둘 다 안정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사랑으로 발전될 것이다. 그 결과 나만 사랑받기 원하는 이기적인 사랑이 아닌 나도, 상대도 사랑 안에 거할 수 있는 이타적인 사랑이 된다.
계몽을 통해 인간은 이성적이며 실용적 사고를 하게 되었다. 이를 르네 데카르트( René Descartes, 1596-1650) 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고 정의하였다. 반면 장 뤽 마리옹 (Jean-Luc Marion, 1946 ~ )은 “나는 사랑한다. 고로 존재한다”로 바꾸어 인간의 존재를 사랑에서 출발시킨다. 사랑은 인간을, 자신을, 타인을 존재하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시작이다. 그러니 잘못된 사랑으로 상대와 나를 부재하게 만들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