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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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짐의 아름다움

                                                                           




                                                                         
<주전자에 호두가 들어간다>, 2020, 광목,실,아크릴, 160×130cm







<실체에 기댄 채 자기 자신을 보여주는 일>, 2020, 종이에 색연필, 43.9×31.6cm







<결국, 이 말이 하고 싶었다.> 전시전경, 2020

                                                                 




                                  
<휴지 조각>, 2020, 테이프,종이상자,뽁뽁이, 40×12×12cm




                                                                         



                                                                 

<청소하기 싫을 때>, 2020, 철사,스펀지,종이,나무막대기,천조각,
50×22×19cm 








     <심미적으로 매달기>,2020, 구슬,철사,줄,러그, 가변크기








<결국, 이 말이 하고 싶었다.> 전시전경, 2020





   
  <결국은 이 말이 하고 싶었다.>는 3인 초대전으로 3인의 작가가 각자 직면한 문제에 대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작품을 선보인 전시였다. 본 연구자는 부천시 삼정동에 위치한 소각장이 도심 속 복합 문화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한 부천아트벙커 B39의 장소성에 주목했다. 부천 아트벙커 B39는 쓰레기 소각장 시절의 모습을 부분적으로 보존하여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건축물이다. 그래서 본인에게 부천아트벙커 B39 폐기물산업시설의 장소성은 흥미롭게 다가왔다.
쓰레기 소각장은 세상의 모든 사물이 쓸모를 다하고 버려져 종착하게 되는 장소이다. 이곳엔 소외되거나 배제되었던 객체의 찌꺼기가 그 존재를 여실히 드러내는 상태와 순간이 담겨있다. 소각장이라는 장소성은 수명을 다한 인간이 소각되는 장례식장과의 유사성을 갖는다. 모든 사물이 결국 소멸의 쓰레기가 됨은 인간이 유한성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현실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 공간에서 찌꺼기의 재료로 만들어진 사물들을 전시하였다가 이를 전시 종료와 함께 다시 쓰레기로 처분하여 소멸시키는 과정의 작업을 하였다. 본인에 의해 재조합된 찌꺼기는 의미 있는 사물이 잠시 되었다가 다시 소멸하게 되는데, 여기엔 시간의 흐름과 필연적으로 소멸하는 만물에 대한 인식이 담겨있다.
나무판자, 각목, 말라버린 나뭇가지, 휴지심, 박스, 우드락, 스펀지, 뽁뽁이, 마스킹테이프 등의 재료들은 일상의 순간 속에서 연약하고 부실하기에 더 쉽게 부패하여 소멸하는 것들이다. 매끄럽게 연마되어 단단한 내구성을 자랑하는 완벽한 사물들과 달리, 이러한 재료들에는 사라짐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따라서 연구자가 사용하는 일상적 사물들은 눈에 명확히 보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타남과 사라짐을 반복한다.
전시 모습을 보면 저 나름대로의 형상을 가진 오브제들이 벽에 걸리거나 기대어 있고, 땅에 붙어있거나 천장에 매달려 있으며, 바닥에 널브러져 있거나 구석에 가만히 서 있다. 그런데 이처럼 작품들이 곳곳에 위치하여 공간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공간은 비워진 듯한 텅 빈 공간으로 다가온다. 설치 전과 후의 모습엔 큰 변화가 없어 보인다. 그 이유는 공간에 설치된 오브제들이 갖는 하찮음, 부실함, 무용함이 소멸을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불가능성과의 직면은 인간의 유한적 한계로부터 오는 ‘덧없음’에 대해 되묻게 한다.


















< 어떻게 돌아가는 물건인지 모르겠다.>, 2020, 우드락,박스,종이테이프,화병,식물,나무판, 식물 지지대, 가변크기







<설치>
<철수>


          
설치가 철수 되기 이전에 이미 오브제들을 통한 불가능성에 대한 인정이 전제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여럿의 오브제들로 차 있던 공간에선 ‘비어있음’을 경험하고 설치 철수 이후에 마주하게 된 비어 있는 텅 빈 공간에선 사라진 것들의 잔상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파스칼보니체(Pascal Bonitzer, 1946)는 그의 논문 『사라짐』에서 이러한 텅 빈공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비어 있는 영역은 빈 것이 아니다. 안개, 곧 사라지는 얼굴, 사라지는 현존 혹은 어떤 움직임들로 가득 채워진 빈 영역은 계획,열정, 인간 실존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에서 마침내 해방된 존재의 최종 지점을 나타낸다.”1)



모든 유형의 사라짐은 공허함과 덧없음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이 공허함과 덧없음은 고통과 슬픔을 동반하기에 피하거나 외면하게 되는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이러한 사라짐에 대면하여 이를 인식하고 더 나아가 사라짐의 고찰로 나아갈 때 인간이나 사물의 실존은 가능성과 잠재성으로 가득채워져 생명력이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1) 파스칼 보니체, 『영화와 회화 – 탈배치』, 홍지화, 동문선, 2003,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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