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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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이 되지 말자


 



                                             
  <그러한 색, 그러한 결, 마모된>, 2021, 지점토,돗자리,나무판,나무막대기,포장지,페인트,  가변크기


 


                                                               
                                                         <우물 대야>, 2021, 대야,조약돌,아크릴, 73×73×40cm








                                                                   <삼각기둥>,  2021, 혼합매체, 82×25×9cm







                                                    
                                                                                         
         
                                                                                                                                                                                                                                                               


<사물이 되지 말자> 전시는 모든 것이 사물화를 통해 동일성 원리 안에 복속되어버린 오늘날의 현실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되었다. 본인은 오늘날 미적 커뮤니티를 통해 자신이나 삶의 모든 것을 노출하는 문화에서 비롯된 ‘긍정 사회’1)에 주목한다. 미적 커뮤니티 속 긍정성만 드러내기 바쁜 체계는 서로를 소비해야 하는 한 컷의 상품형태로 바라보게 하며 이를 통해 개인을 획일적 주체로 만든다. 이러한 사물화된 사회에서 본인을 포함한 다수가 한 컷의 사물이 되어가고 있는 현실에 대한 외침으로 “사물이 되지 말자”라는 제목을 붙이게 되었다.
본인은 ‘긍정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기만적인 요소로 뒤덮여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와 달리 오늘날 ‘투명성’이란 단어는 정치나 경제를 넘어 사회 전반에서 강조된다. 그 이유는 투명성은 더 많은 민주주의와 정보의 자유, 그리고 더 높은 효율성을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은 계속해서 속이 들여다보이는 상태를 요구하기에 노출이 강요되며, 노출의 강요는 오히려 그들의 정직성을 잃게 만든다. 본인은 이러한 현실에 대한 비판과 함께 더 나은 세상에 대한 모색으로써 작품을 만들고자 했다. 따라서 일상적 사물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고 있는 사물을 발견하여 이를 통해 오늘날 잃어가고 있는 정직성에 대해 주목하고자 했다.
일상에서 포착된 순간에 의해 수집된 사물들은 현실 그대로의 모습에 가까운 상태로 작품에 들어간다. 있는 그대로 전시장에 들어온 사물들은 서로의 경계를 구분하지 않는다.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상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뿐이다. 그 당시 그곳에 있던 이 사물들은 새로운 자리에 조금은 변화된 모양과 각도로 놓인다. 이 조각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에는 그 당시의 상태와 상황, 연구자의 조형적 시도, 공간과의 연관성, 주변에 위치한 사물 간의 관계 등의 수많은 요소가 존재한다. 따라서 사물을 만드는 과정은 계획적이고 확실한 구성으로 정해진 시간 내에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예측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무차별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증식된다.



1) 한병철은 <투명사회>에서 '긍정사회'를 모든 부정은 배척하고 긍정만 추구하는 오늘날의 사회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했다.

                       
                                                                                                                                                                     



 
<달을 무기력하게 줄곧 응시하고 있다>, 2021, 50×30cm,
종이에 아크릴
   
                 




             

<꼼짝달싹>, 2021, 아이소핑크,스펀지,구슬,나무젓가락,지점토, 가변크기






<검정화분>, 2021, 화분,벽돌, 가변크기

















<늦은 저녁 집에서>, 2021, 목재 테이블, 땅콩껍질, 싱크홀,노란고무줄,철사,실, 가변크기









<사물이 되지 말자> 전시 전경, 2021




   
<사물이 되지 말자>에 나오는 오브제는 하찮거나 별 존재감 없던 일상의 사물들을 재조합한 것이다. 이들은 사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시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서 보지 않으면 그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있었는지도 모르고 사라지는 나무젓가락 포장지, 필요할 땐 반갑지만 불필요할 땐 망설임도 없이 버려지는 유연한 노란 고무줄, 설거지할 때마다 닦기를 미루게 되는 싱크홀, 먹다 남은 땅콩 껍질들, 나뭇가지’ 이러한 익숙하지만 낯설고, 없어도 되지만 또 없으면 안 되는 사물들은 어느 한 곳에 명확하게 속하지 못한 채 그 사이에서 비스듬히 걸쳐있다. 나머지로 취급받는 이 사물들은 어떤 식으로도 분류할 수가 없다. 분류의 과정에서 떨어져 나온 ‘나머지’로 총괄되어 불릴 뿐이다. 이러한 세상의 어설픈 것과 쓸데 없는 것, 약한 것에는 긍정 사회의 동일성 원리에 의해 삭제되는 찌꺼기의 모습이 투영되어있다.
‘다원적 정보력과 의사소통’이라는 이름하에 우리는 과도한 가시성의 장에 갇혀 그 안에서 눈에 띄는 상품 즉 사물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부정성을 수정하고 다듬어 긍정의 것들로 포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애매하고 걸리적거리는 부정성은 고민 없이 제거의 대상이 되며 포장 안에 가려진 ‘나’ ,‘너’, ‘우리’, ‘사회’의 모습은 기만으로 가득 차게 된다. 따라서 오늘날의 사회는 정직과 거리가 멀다.
반면 알랭 바디우(1937~)는 약함에 대해 ‘자체의 실제적인 내용 말고는 아무런 위세와 가식이 없으며 초라한 투박함만 가진 것’ 이라 표현한다. 이처럼 연약함을 갖는 찌꺼기의 사물엔 정직이 머문다. 이들은 어떤 것에 속하지 못하고 애매한 위치에 존재감 없이 있지만, 오히려 그 애매함과 무존재감은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게 함으로써 정직한 사물이 된다.
전시 전경엔 여백의 공간이 많으며 단순성과 단출함이 내재한다. 더불어 이 여백은 곳곳에 있는 생동감 있게 빚어진 비정형적인 조형이나 거친 드로잉과 함께 시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본인은 이러한 구성을 통해 단순해 보이지만 난해하며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를 담아낸다. 따라서 관람객은 생각을 멈출 수 없는, 낯섦과 친숙함의 순간이 중첩되어 끝없이 이어지는, 무한히 확장되는 열린 영역으로 나아간다. 흔하고 연약한 재료의 사용은 절대적이거나 강요적인 상태에서 벗어나게 한다. 따라서 약한 위치에 있는 작품은 관람객이 대상 자체의 정직한 상태인 실제성에 더 가까이 다가가도록 유도하며 그 과정에서 다수가 공존할 수 있는 자유로운 상태를 제공한다.






     <사물이 되지 말자> 전시 전경,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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