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짜보다 더 진짜같은 가짜에 속지 말자 >
2022.04.19
유승희
유승희
이모티콘이나 캐릭터와 같은 시리즈 작업물이 무작위로 쏟아지는 NFT 시장에서 개인적 내러티브를 갖고 작품을 올릴 때마다 ‘나 혼자 엉뚱한 짓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다수의 분위기 속에 어울리지 못하면 아무도 모르게 여기서 묻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순간적으로 엄습해왔기 때문이다.
본인은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에 속지 말자’라는 메시지를 담은 드로잉들을 올리는 것이 수많은 작품들 속에 묻히는 ‘소리 없는 아우성’ 같아 보일지 모르지만 이것이 지속성을 가질 때 분명 그 힘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때가 올 것이라 확신한다. 그런 작은 시도가 모이고 쌓여서 어떤 사조를 만들어내고 그 사조가 어떤 시스템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될 수 있고 그 성찰이 더 나은 상황에 대한 물꼬를 티워 주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이러한 굳은 믿음이 Opensea에 입장할 때 흔들린다는 것이다. 마치 편의점에 일렬로 진열해놓은 코카콜라 음료수처럼 비슷한 모양의 작품들이 끝없이 진열된 모습, 그러한 작품들에서 보이는 판매표시, 많은 좋아요 수 와는 달리 페인팅같은 작품이 달랑 하나씩 업로드 되어 있고, 장황한 설명글과 함께 단 한번도 판매가 이뤄지지 않은 표시 그리고 2-3개의 초라한 좋아요 수를 가진 본인의 작품을 볼때면 말이다.
인터넷 매체는 전체주의 경향이 강하다. 개인의 미디어 매체 사용은 다수와 연결되어 소통하기 위함에 있는데, 이때 개인은 그 매체의 이용자로서 다수의 이용자들과 결속되어 그 안에서 소속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 소속감은 그 안에 정립된 체계에 자연스럽게 순응하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인터넷 미디어 사용자들은 집단성을 갖는다. 그러나 이러한 집단성은 집단을 개인보다 우위에 놓도록 만들기에 개별적 사유의 부재를 일으킨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1906~1975) 는 악을 ‘비판적 사유의 부재’라고 규정하였다. 그녀는 전체주의는 사유의 부재를 통해서 작동된다고 보았다. 사유의 부재가 깔려있는 전체주의는 개인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전체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 왜냐하면 사유 없는 발전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발전이 없는 주체, 사회, 국가, 세계가 큰 위험과 절망에 빠지는 이유이다.
본인은 이러한 인터넷 미디어의 전체주의적 성향이 가상 세계라는 특성으로 인해 극대화된다고 본다. 세밀한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어 더디게 진행되는 현실과는 달리 깔끔하고 빠르게 진행되는 가상세계에선 더 쉽게 집단적 결집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의 가상세계는 어떤 공동의 기준이나 체계에 의해 추려지고 다듬어지면서 개별적 사유의 부재가 일어나기 쉬운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본인은 매끈하게 다듬어진 그래픽이나 일러스트와 같은 그림이 아닌 손결의 움직임이 담긴 투박한 드로잉을 선보이고, 캡쳐가 통용되는 인터넷상에서 한 개의 이미지는 아무 의미 없겠지만 여러 개의 복제품이 아닌 단 하나의 작품을 업로드하는 것이며, 현실 세계를 부정할 수 없는 요인들을 주제로 삼아 가상세계에서 잠깐 지나가는 순간만이라도 현실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가 신기하고 기발한 메타버스 시대에서 그저 즐기며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닌 이곳에서 현실 세계의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태도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각자에게 던져 보자는 것이다. 어느 기사에서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셀카를 자신의 본 모습으로 착각하고 살아간다는 내용을 접한 적 있다. 본인도 종종 셀카의 모습과 타인이 찍어준 사진의 내 모습이 다를 때 부정하면서 ‘이게 진짜 내 얼굴이라고?’라고 하며 셀카의 모습이 내 모습이라고 혼자 우길 때도 있다. 또한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넷플릭스 <애나 만들기>처럼 주인공 애나가 자신의 꾸며진 SNS 모습을 통해 상속녀 행세를 하며 뉴욕 사교계를 발칵 뒤집었던 사건은 무수히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된 형태로 계속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진짜보다 더 진짜같아 더 믿고 싶게 하는 가짜에 대응하기 위해 인간은 ‘비판적 사유’를 해야 하며 예술뿐만 아니라 과학, 기술, 사회, 문화, 정치, 경제 등의 모든 부분에서 인간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패막은 비판적 성찰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