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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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지팡이 >
                                                                                                                           

2023.01.30
유승희
   


“ 자신에 대한 환상은 혼자 걸을 수 없는 사람에게는 유익한 지팡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지팡이는 사람을 더욱 약하게 만들 뿐이다. ”1)




 
허상, 허구, 환상, 가상과 가까이 지내는 21세기. 모든 이가 원하는 대로 조정하고 창조할 수 있는 온라인 세상은 환상적이라고 여겨지기에 이상적인 공간이다. 지팡이가 혼자 걸을 수 없는 사람에게 유익한 것처럼 사이버에서 만들어지는 환상은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을 일으켜주는 유익한 지팡이다. 유익한 지팡이는 대리 경험을 통해 즐거움과 만족을 준다. 이 만족감은 의식적으로 자신이 현실계의 자유로운 존재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기에 자기 의지를 가진 개인이라는 환상을 가져다준다. 짧은 시간 안에 수많은 것들로 자극하여 ‘이게 내가 원하는 건가? 이게 내 모습이 맞나?’하는 성가신 의문에 시달리지 않도록 빠르게 도피시켜준다. 그러면 개인은 자기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와 멀어져 불안감을 잊게 된다. 여기서 불안감은 없어지지 않고 여전히 남아 순간적으로 잊혀질 뿐이다. 따라서 현실계의 자신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현실과의 진정한 관계를 잃고 불안감을 누적시킨다. 그래서 “유익한 지팡이는 사람을 더욱 약하게 만들 뿐이다.”라는 것이다. 유익한 지팡이, 혼자 걸을 수 없는 사람에게 얼마나 고마운가. 감동적이기까지 한 지팡이가 아닌가. 그런데 오늘날 혼자 걸을 수 없는 사람에게 절실한 지팡이의 등장으로 전달되는 반가움과 따듯함은 온라인 세상에서 개인을 더욱 약하게 만드는 속임수가 되고 있다.
사이버 세상에서 생성되는 환상을 ‘유익한 지팡이’에 빗대어 설명해 봤다. 에리히 프롬(Erich Pinchas Fromm/ 1900-1980)은 『자유로부터의 도피』 에서 근대 산업 체계로부터 비롯된 문화에 등장한 자신에 대한 환상의 위험성에 대해 위에 인용한 글과 같이 지팡이를 가져와 설명한다. 이 책을 집필할 당시가 1940년대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의 이론은 지금 동시대에도 시의적절하다. 근대인을 자유라는 이름 하에 유대를 끊고 개인을 고립시켜 무력한 존재로 만들었다는 날카로운 해석은 현대인이 여전히 새로운 형태의 전체주의 지배에 복종하여 진정한 자유로부터 멀어지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여기까지의 글을 읽으면 염세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프롬이 자발성을 통해 개인을 고립시키는 현대의 비극적인 자유의 극복 가능성을 발견한 것처럼, 본인은 자발적인 활동에 대한 고찰을 통해 전술한 유익한 지팡이를 진정으로 유익하게 만들려는 목적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프롬은 자발적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개인을 예술가로 정의한다. 그는 ‘어떤 풍경을 새롭게 자발적으로 감지할 때, 우리가 생각한 결과로 어떤 진리를 깨달을 때, 정형화되지 않은 감각적 쾌감을 느낄 때, 또는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이 솟아날 때, 이런 순간에 우리는 누구나 자발적인 행동이 무엇이지 알게 된다2) 고 한다. 예술가는 자신이 바라본 세상에 대해 자신의 표현을 과감히 드러내는 사람들이기에 자발적인 행동을 인지하는 순간이 일반인들보다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엔 예술가들 중에서도 타인의 기대와 니즈(Needs) 혹은 경제적, 사회적 생활을 통해 가짜 자아를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기에 예술가를 자발성을 대표하는 대상으로 보기는 어렵다. 대신 자신이 느끼고 말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능력을 가진 아이들이 자발성의 의미를 제대로 드러낸다.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함이 묻어난 드로잉을 볼 때면 왠지 모르는 희열과 위로를 얻게 된다. 그 이유는 어느 누구도 의식하지 않은, 자발성이 느껴지는, 어리숙한 드로잉들에서 인간 본연의 자유에 대한 갈망을 잠시나마 해소할 수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프롬은 자유를 소극적인 자유와 적극적인 자유로 나눈다. 소극적인 자유는 가짜 자아가 느끼는 자유이고, 적극적인 자유는 자발성을 바탕으로 느끼는 자유이다. 그는 적극적인 자유가 자아실현의 형태라고 보며 이는 개인의 독특성을 충분히 긍정하는 것이라 한다. 더불어 인간은 자발적인 활동을 통해 매 순간 안정을 얻는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국민이 애용하는 쿠팡은 거의 모든 물건을 가장 합리적인 가격에 빠른 배송으로 받아 볼 수 있는 대한민국 대표 배송 플랫폼이다.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수많은 종류의 물건을 한 번에 비교해 보고 합리적인 가격을 찾아 빠르게 배송받아 볼 수 있는 현실은 오히려 물건에 대한 현실감각을 잃게 만든다. 분명히 자신이 고르고 골라 배송받은 물건이지만 너무나도 쉽게 잊어버리거나 버려지고 어느새 새로운 물건을 쇼핑하고 있는다. 프롬은 우리가 그 물건을 사용한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 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우리가 창조적 활동을 통해 대상과 진정한 관계를 맺어야만 그것이 사람이건 무생물이건 비로소 우리 것이 된다3) 고 한다. 여기서 창조적 활동이란 자발적 활동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그 대상을 진정으로 느끼고 생각하며 이를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 자기화하는 것이 대상과 진정한 관계를 맺게 하는 창조적 활동이다. 쉽게 사고 쉽게 버려지는 물건. 물건은 많지만 자신의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를 대신해 주는 아바타, 프로필, 인스타 속 추려진 아름다운 모습 등은 넘쳐 나지만 적극적인 자유를 누리는 ‘나’는 사라진다. 나와 진정한 관계를 맺지 못한 사물들이 버려지듯이, 나 자신과의 자발적인 관계를 맺지 못한 자신도 버려져 어디있는지도 모를 지경에 이르게 생겼다. 소각할 장소가 없을 만큼 막대하게 버려지는 쓰레기의 양은 쉽게 사고 버리는 행위에서 드러나는 현대인의 불안감과 그 크기가 비례할 것이다. 매 시즌 새로운 유행, 디자인, 모델명이 다 알기도 어려울 정도로 쏟아지는 현상은 현대인의 불안을 상징한다. 그 많은 정보 앞에서 우리의 감정과 비판적 판단은 얼어버린다. 결국 버거운 우리의 태도는 단조롭고 무관심한 성질을 띨 수밖에 없다. 자발성을 잃은 인간은 불안하다. 자발성을 잃었는지조차 모르고 미디어의 체계 속에서 자동화되는 인간에게 불안감은 배로 쌓인다. 따라서 불안이 아닌 안정을 위해 자발성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1)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휴머니스트, 김석희, 2020, p.269
2)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휴머니스트, 김석희, 2020, p.281
2)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휴머니스트, 김석희, 2020, p.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