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상한 것이 주는 무력감을 이기는 방법








<쳐박힌 인간>, 가변설치, 아이소핑크,인조털,아크릴, 2022





                                                                         








<괴물나라>, 97×75cm, 판화지에 아크릴, 2022










<재가 쌓일 동안 점점 많아지는 머리카락>, 150×30×30cm, 목조좌대,나무막대기,향,머리카락, 2022






                            





                                                                       









<사람얼굴을 가진 새와 돼지 발을 가진 사람>, 34×17cm, 판넬에 아크릴, 2022










<들리지 않는 인기척>, 가변설치, 종,목재구슬,실, 2022
















<괴상한 것이 주는 무력감을 이기는 방법>




    본 작업은 본인이 포스트휴머니즘 시대를 경험하면서 충돌되는 생각과 감정에 대해 다루고 있다. 동시대에선 인류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여러 시도들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인공지능(AI), 유전자 조작, 인공보철 등 기술은 인간을 점점 더 사이보그적인 존재로 변화시킨다. 한 손에는 스마트폰이, 그리고 손목에는 스마트 시계가 살과 밀착되어 있는 모습은 흔하다. 심지어 인간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의 모습을 한 가상모델이나 휴머노이드 로봇과 동시대를 같이 살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마치 중국의 신화인 산해경(山海經)에 등장하는 (사람 얼굴에 새의 몸통을 가진) 괴상한 생물체처럼 동시대의 포스트휴머니즘은 도교(道敎)사상과 유사하게 자연의 순리를 벗어나 이것, 저것을 혼합시켜 괴상한 것들을 만들어 낸다. 본인은 오늘날 사이보그화 되는 인간의 모습들에서 기이하고 괴상하며 거북한 감정을 느끼는 동시에 수용을 거부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해 무력감을 느낀다.
  이 시대는 엄청난 기술력을 통해 인간의 위대함을 느끼게 하는 반면, 인간의 비속한 모습도 발견하게 한다. 비속한 모습엔 인간의 위대함에 가려진 무지함과 무력감이 자리한다.  현재 인간은 기술의 발전으로 자율주행, 배달 어플, 카카오 택시 등 극한의 편리함을 누리고 있는가 하면 마약을 밀수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마약 운반책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뱃속에 마약을 가득 채워 마약 운반하는 ‘보디 패커’들은 살짝 움직이기라도 하면 터져 죽을 지 모르는 위험을 감수한다. 그들에게 자신의 몸은 어떤 의미이며, 인간이란 존재는 어떤 존재이기에 자신을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게임 캐릭터 대하듯 대하는가. 그저 한 공간을 차지하는 덩어리에 불과하는가. 과학 기술에서 비롯된 물질주의, 유물론적 사고는 인간의 의미를 사물과 별반 다를 것 없는 물질로 취급하게 만든다. 그리고 물질주의는 미디어 속 가상세계에서 시각적인 것으로 극단화된다. 이러한 피할 길 없는 사회에 대해 본인은 블래즈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이 모순에 대해 서술한 글을 통해 괴상한 것들을 피할 길을 찾는다.



“인간의 위대함을 보여 주지 않고 인간이 얼마나 짐승 같은지를 지나치게 보여 주는 것은 위험하다. 그리고 비속함 없이 그의 위대함을 지나치게 보여 주는 것도 위험하다. 이 두 사항을 모른 채 내버려 두는 것은 더더욱 위험하다. 그러나 이 두 면을 보여주는 것은 매우 이롭다.”_블레즈 파스칼, 『팡세』, 을유문화사, 현미애, 2013, p.59


  인간의 삶은 양극에 치달아 있는 모순들로 이뤄지기 때문에 이 두 면을 들여다볼 때 그 사이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찾을 수 있다. 그래야지 삶이 이로운 방향으로 갈 수 있다. 미디어에 빠져 있는 일상에서 거북하고 찝찝한 감정이 들어본 적 있다면 양극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았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본인은 기술로 뒤덮인 동시대에서 인간의 위대함이 아닌 비속함에 주목하고자 한다. 위대함에 빠져 비속함을 보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저속함을 넘쳐나게 할 뿐이다. 동시대의 물질주의와 유물론은 물질과 현상 즉 ‘지금 당장’에 갇히게 한다. 특히 물질주의는 미디어 속 가상세계에서 시각적인 것으로 극단화된다. 여기서 시각적인 것들은 순간적이고 반복적이며 단편적이다. 그리곤 순간의 단편들이 제멋대로 혼합되어 괴상함을 만들어낸다. 괴상함은 다원주의 개념 아래 개성으로, 서로 다름에 대한 인정으로 평범한 척한다. 본인은 그 평범한 척에 의연하게 넘어가야 하는 현실에 무력감을 느껴 작업을 통해 이 시대에서 왜곡되거나 새롭게 재정립되고 있는 인간의 개념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자 한다.







   
출처: Google image






            











<소수자가 다수자되기>, 80×80cm, 판넬에 아크릴, 2022





                                                            







     
<죽음 앞에 놓인 존재론적인 불안>, 75×37cm, 판넬에 아크릴, 2022






 
<죽음의 기이한 재탄생>, 75×37cm, 판넬에 아크릴,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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